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몽고메리 클리프트 (문단 편집) === 비극의 시작 === 30대 중반이 된 1956년, 클리프트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남북전쟁]] 시대 배경의 <애정이 꽃피는 나무(Raintree County)>(1957)를 찍던 중에 할리우드 힐스에 위치한 테일러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 들떠있던 클리프트는 귀가길에 [[진정제]] 두 알을 먹었는데 이게 하필 졸음을 유발해 [[전신주]]에 차를 박았다. 치아 여러 개가 부러져 몇 개는 혀를 뚫고 일부는 목 뒤로 넘어가 [[기도(신체)|기도]]를 막았는데 급히 사건현장으로 달려온 테일러가 질식 직전에 구조해주었다.그 와중에 테일러는 순식간에 몰려든 [[파파라치]]들이 클리프트의 끔찍한 모습을 찍지 못하도록 자신의 몸을 이용해 클리프트의 몸을 가려야 했다. 사고 현장 사진을 배포하는 기자는 끝장을 내주겠다는 엄포도 서슴치 않았다. 이때 테일러가 기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호명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 덕에 사고 관련 사진은 현재 단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 턱뼈를 철사로 고정하고 [[성형]]을 했지만 이전의 미모는 되찾을 수 없었다.[* 화면상으론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망가졌다고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당시 업계인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실물로 보면 전후 차이가 충격적으로 컸던 모양이다. 역시 화면상으론 잘 보이지 않지만 육안으론 얼굴에 남은 상처 자국들이 뚜렷하게 두드러졌다고 한다.] 후유증으로 얻은 극심한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약에 의존하게 됐다. <애정이 꽃피는 나무>에서도 쫓겨날뻔 했지만 테일러의 비호로 살아남았다. 촬영은 사고로부터 두 달 후 재개되었다. 작품평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사고 전후 얼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비교해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다행히 클리프트와 테일러의 연기만큼은 찬사를 받았다. 이후 테일러는 어떻게든 클리프트의 경력을 살려내기 위해 자신의 출연작에 클리프트를 추천하기 시작했다. 테일러가 자신의 스타파워를 이용해 다른 배우를 기용하게 만든 건 클리프트가 유일했다. 클리프트는 그렇게 테일러의 배려로 [[테네시 윌리엄스]] 원작의 상업 [[남부 고딕]]극 <지난 여름 갑자기(Suddenly, Last Summer)>(1959)의 배역을 차지했다. 그러나 [[조셉 L. 맨키위즈]]는 친절한 감독이 아니었고, 함께 출연한 [[캐서린 헵번]]은 아직 다 회복이 되지 않은 클리프트에게 감독이 너무 심하게 대한다고 생각해 촬영 내내 싸우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맨키위즈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https://www.nytimes.com/1988/06/19/books/l-sam-spiegel-957188.html|#]] 당시 옆에서 뜯어말리던 제작자 [[https://www.imdb.com/name/nm0818545/?ref_=nv_sr_srsg_0_tt_3_nm_5_q_Sam%2520Spiegel|샘 스피글(Sam Spiegel)]]은 <워터프론트>, <콰이 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3번이나 수상한 거물 제작자다. 침을 뱉은 헵번과 맨키위즈를 보고 일단 뜯어말린 후 자신의 사무실로 따로 불러 둘 다 꾸짖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젠장!"라고 하며 사무실을 나간 맨키위즈 다음 헵번에게 사과할 맘 없냐고 묻자 헵번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고. 여담으로 Sam Spiegel도 산전수전 다 겪어본 강심장으로 유명한 제작자임에도 캐서린 헵번과 조셉 L. 맨키위즈가 둘 다 한 성깔 하는지라 진심 곤혹스러웠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